과학책을 읽고 문장이 남는 경우는 드물다. 코스모스는 그 드문 경우다. 에라토스테네스가 막대기 그림자 하나로 지구 둘레를 재는 대목에서 세이건은 계산식을 늘어놓는 대신, 아무도 던지지 않던 질문을 던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주의 역사를 1년 달력에 욱여넣은 '우주력'도 그렇다. 인류 문명 전체가 12월 31일 마지막 몇 초에 몰려 있다. 숫자로 들으면 잊어버릴 크기가 장면이 되니 잊히지 않는다.
다만 1980년 책이라는 사실은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우주 나이를 150억 년으로 잡는데 지금 정설은 138억 년이다. 세이건이 외계행성을 이야기하던 시점에 인류가 확인한 외계행성은 0개였다. 첫 발견이 1995년이고 지금은 수천 개다. 핵전쟁 경고가 뜨겁게 이어지는 대목들도 냉전이라는 배경을 깔고 읽어야 온도가 맞는다.
문장이 길고, 천문학과 역사와 정치가 한 장 안에서 계속 자리를 바꾸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다. 정보를 빨리 얻자고 편 사람에게는 산만하게 읽힐 수 있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까지 가면 사십 년 묵은 정보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고 히파티아가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이 책이 처음부터 우주 이야기이면서 사람 이야기였다는 게 드러난다. 안다는 것이 왜 지켜야 하는 일인지를 말하는 책이고, 그 부분은 낡지 않았다.
하나 짚어 두면, '창백한 푸른 점'은 이 책에 안 나온다. 그 사진은 1990년에 보이저 1호가 찍었고, 유명한 성찰은 1994년에 나온 다른 책에 실려 있다.